‘IF’의 사전적인 의미는 ‘만약에 ~라면’이다. 은 ‘만약에 내가 축구 기자가 된다면’이라는 슬로건을 가지고 누구나 축구 전문 기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시작됐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부수를 발행하고 있는 ‘No.1’ 축구 전문지 ‘포포투’와 함께 하는 은 K리그부터 PL, 라리가 등 다양한 축구 소식을 함께 한다. 기대해주시라! [편집자주]
“그냥 미친놈처럼 축구에 미쳐야 해.” 광주 FC 이정효 감독을 대표할 수 있는 멘트다. 이정효 감독은 K리그에서 가장 세련된 축구를 구사하는 감독이면서도 선수들에게 불같이 화를 내는 카리스마를 지니기도 했다. 어찌 보면 괴상할 정도다. 하지만 이러한 ‘특이함’이 ‘특별함’으로 작용 중이다.
‘이정효와 아이들’은 지난 시즌 승격 첫해 만에 K리그1 3위를 차지하더니 이번에는 아시아 무대를 호령하고 있다. 2024-25시즌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엘리트(ACLE) 동아시아 지역 리그 스테이지에서 4승 1무 1패로 무려 ‘2위’에 올라있다. 한편 ACLE에 동반 참여 중인 포항 스틸러스와 울산 HD는 각각 5위와 12위에 위치해있다. 특히 이번 시즌 리그 3연패를 달성한 울산은 토토사이트 ACLE 전 경기에서 패하며 16강 진출 가능성이 매우 희박한 상태다.
‘흑’에서 ‘백’을 만든 정효볼의 축구 색깔
참으로 대조적이다. 얇은 스쿼드와 빡빡한 일정으로 후반기를 치른 ‘리그 9위’ 광주가 울산과 포항보다 훨씬 좋은 성적을 ACLE에서 거두고 있다. 흔히 돈을 많이 쓰는 팀이 좋은 성적을 거둔다는 표현을 많이 사용한다. ‘축구 자본주의’ 논리다. 일류 감독과 선수에게 돈을 투자해 성적으로 성과를 내는 것. 축구 자본주의는 지극히 일반적인 사고다. 그러나 2015-16시즌 레스터 시티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차지한 ‘레스터 동화’ 같은 일도 있다. 이는 기적, 돌풍, 반란이라는 단어로 찬란하게 포장된다.
다만 다크호스라는 포장은 쉽게 벗겨진다. 축구 자본주의의 냉혹함이 다시 찾아오기 때문이다. 좋은 활약을 펼친 선수들이 빅 클럽으로 이적하면서 ‘돈의 힘’에 밀려 순위를 지키지 못한다. 광주 역시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지난 시즌 구단 역대 최고 성적을 거두면서 ACLE까지 진출했지만 팀의 부주장이자 핵심 역할을 수행했던 이순민이 겨울 이적시장에서 대전하나시티즌으로 떠났다. 올 시즌 도중에는 재정적인 이유로 ‘간판스타’ 엄지성의 유럽 무대 진출을 허락해야만 했다.
어쩔 수 없었다. 광주는 살림살이가 넉넉지 않은 편이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이 발표한 ‘2023 K리그 연봉 지출 자료’에 따르면 광주는 1부 리그 팀 중 가장 적은 지출액인 약 59억 원을 시용했다. 이것도 K리그2에서 승격을 해 전년대비 18.6% 증가한 규모다. 가장 많은 지출을 기록한 전북 현대(약 198억 원)와 비교하면 3배 이상이 차이 난다. 하지만 K리그 팬들이 아는 것처럼 광주는 전북의 4위보다 높은 3위를 기록했다. 저비용 고효율의 극치를 보여준 팀이었다.
광주는 명백한 흑수저다. 돈을 많이 쓰는 팀을 ‘백수저’ 그리고 적게 쓰는 팀을 ‘흑수저’로 구분한다면 광주는 후자에 속한다. 굳이 따지자면 광주는 흑수저 중에서도 흑수저다. 지출액을 비교했을 때 광주보다 한 단계 높은 순위인 대구 FC의 약 84억 원과 25억 원 정도가 차이 난다. 축구 자본주의의 논리가 광주의 ‘돌풍’이라는 포장을 벗겨내지 못한 것은 광주에는 정효볼의 축구 색깔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돈은 흑수저 정도만 썼지만 성적은 백수저만큼 냈다.
이정효 감독은 광주 감독 3년 차로서 자신의 축구 색깔을 온전히 팀에 담아냈다. 후방부터 시작되는 탄탄한 빌드업과 유연한 ‘포지션 체인지’를 통한 공격 전개가 특징이다. 특히 광주의 전략은 상대 팀을 가리지 않는다. 상대적 강팀이든 약팀이든 같은 접근 방식으로 축구를 펼친다. 이것이 정효볼의 매력적인 부분이다. 더불어 이정효 감독은 자신의 축구를 제대로 이행하지는 않는 플레이가 보이면 불같이 화를 낸다. 필드 위에서 단 한순간도 집중하지 못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이정효 감독의 카리스마는 광주 선수들이 미치도록 뛰게 하는 원동력이다.
광주의 ‘선전’과 전북의 ‘몰락’으로 보는 감독의 중요성
“너희 이름 있어? 여기 이름 있는 선수 있어? 없어!” 이번 시즌 리그 12라운드 대구전 패배 후 공개된 이정효 감독의 라커룸 연설이다. 네임드 있는 선수는 없지만 광주는 이정효 감독 지휘 아래 자신들의 축구 색깔에 부합하는 선수들을 가지고 2시즌 연속 리그 잔류에 성공했다. 대구, 대전, 전북, 인천 유나이티드 등 역대급으로 치열했던 강등권 싸움에서 살아남았다는 사실 자체로 광주에는 큰 성과라고 볼 수 있다. 또한 ACLE에서는 동아시아 지역 리그 스테이지 2위로 순항 중이며 8위까지 주어지는 다음 라운드 진출도 충분히 노려볼 수 있는 상황이다.
이정효 감독과 함께 선전하고 있는 광주에 극명히 비교되는 팀이 있는데 바로 ‘명가’ 전북이다. 전북은 이번 시즌 다사다난한 한 해를 보내고 있다. 단 페트레스쿠 감독과 함께 호기롭게 시즌을 출발했으나 성적 부진으로 팀을 떠나며 전북에서 코치와 감독 대행을 맡았던 김두현이 전북의 지휘봉을 잡았다. 강등권 탈출을 위해 구단은 씀씀이를 아끼지 않았다. 여름 이적시장에서 리그 ‘슈퍼스타’ 이승우를 비롯해 많은 선수를 데려왔다. 그러나 전북은 ‘승리 DNA’까지 살 수 없었으며 강등권을 벗어나지 못해 승강 플레이오프라는 결과를 받아들여야 했다.
전북은 리그를 제패하던 영광의 시절을 만든 최강희 감독이 떠난 후 지속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조세 모라이스, 김상식, 페트레스쿠, 김두현까지 최강희 감독 이후 4명의 감독이 팀을 이끄는 동안 팀의 색깔이 사라졌다. ‘닥치고 공격’이라는 슬로건이 팀을 대표하는 키워드이자 색깔이었으나 지금은 찾아볼 수 없다. 이전의 ‘닥공 축구’는 물론 현재 추구하는 색깔조차 불분명한 팀이 됐다. 여러 감독이 팀을 거쳐가는 동안 자신의 축구 철학을 확실하게 팀에 입힌 지도자는 한 명도 없었다.
광주와 전북의 대조되는 행보를 통해 감독의 중요성을 엿볼 수 있다. 팀에 어떤 선수들이 포진하고 있는지 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감독의 역할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 지난 시즌 리그 3위와 이번 시즌 ACLE 2위로 기대 성적을 훨씬 웃도는 이정효의 광주가 단적인 사례다.
K리그에는 ‘제2의 이정효’가 절실하다. 이정효 감독의 캐릭터적인 면모보다는 축구 철학이라는 부분에서 그렇다. 물론 이정효 감독의 성격이나 캐릭터는 리그 흥행에도 도움이 된다. 그러나 축구 구단을 이끄는 지도자라는 관점에서 확고한 축구 색깔과 철학으로 재밌는 축구를 보여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고무적인 점은 이번 시즌 그러한 지도자를 K리그에서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윤정환(강원 FC), 정정용(김천 상무), 유병훈(FC안양), 김현석(충남아산) 감독 등을 꼽을 수 있다. K리그는 생태 환경 상 필연적으로 지자체나 모기업에 ‘재정적 의존성’이 높다. 모든 팀들이 울산과 전북처럼 돈을 쓸 수 없다. 그렇다면 축구 자본주의를 깰 유능한 지도자가 많이 있으면 된다. 그런 관점에서 이번 시즌은 희망적이었다. 앞으로도 이정효 감독과 같은 능력 있는 지도자가 많이 배출돼 K리그와 한국 축구에 긍정적인 바람이 불기를 바란다.